예전에는 행복한 것을 바래왔지만 그거 다 환상이라는 걸 알고있다.
불행하니까 행복만 쫓게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영원할 수도 없는 감정이나 순간에 행복할거라는 틀거리 씌워봤자 그건 불안감만 조성하고, 그 순간과 감정에 집착하게끔 만들 뿐이다.
오히려 불행이야말로 얼마나 약자들의 감정인가.
불행할지언정 그게 패배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 그 탄력성을 보라.
내가 낭만주의적이라는 비판은 이 부분까지 수용할 수 있고
행복에 대한 환상은 내 스스로 버리겠다.
다만 내가 행복에 대한 환상은 버릴지언정
나는 사람들이 함께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른 구조에 대한 구상은
여러 번 비판을 받으며 여러 번 고칠지언정
그 것이 가능하리란 가능성만큼은 그저 패배주의에 젖어 버리고 싶진 않다.
지금 패배주의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탓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말릴 것이다.
지금은 패배주의를 느끼기 쉬운 상황인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위대한 투사가 아닌 것만큼이나
지금은 패배주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그건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내가 잘 알고있다.
지금 한 순간의 좌절과 패배주의
그게 오히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잊고서 살아왔던 삶이 부끄러움 많은 삶이다.(이게 내 삶이지)
떠나고 싶다. 하지만 돌아오게끔 되어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공간이 함께 바뀌어가야 할 공간이라는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의지도 굽히지 않는다.
불행하니까 행복만 쫓게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영원할 수도 없는 감정이나 순간에 행복할거라는 틀거리 씌워봤자 그건 불안감만 조성하고, 그 순간과 감정에 집착하게끔 만들 뿐이다.
오히려 불행이야말로 얼마나 약자들의 감정인가.
불행할지언정 그게 패배주의로 이어지지는 않는 그 탄력성을 보라.
내가 낭만주의적이라는 비판은 이 부분까지 수용할 수 있고
행복에 대한 환상은 내 스스로 버리겠다.
다만 내가 행복에 대한 환상은 버릴지언정
나는 사람들이 함께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른 구조에 대한 구상은
여러 번 비판을 받으며 여러 번 고칠지언정
그 것이 가능하리란 가능성만큼은 그저 패배주의에 젖어 버리고 싶진 않다.
지금 패배주의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탓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말릴 것이다.
지금은 패배주의를 느끼기 쉬운 상황인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위대한 투사가 아닌 것만큼이나
지금은 패배주의를 느끼는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그건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내가 잘 알고있다.
지금 한 순간의 좌절과 패배주의
그게 오히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잊고서 살아왔던 삶이 부끄러움 많은 삶이다.(이게 내 삶이지)
떠나고 싶다. 하지만 돌아오게끔 되어있다.
내가 지금 있는 공간이 함께 바뀌어가야 할 공간이라는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의지도 굽히지 않는다.

